제 697 호 [기자석] 우리의 삶은 그저 게임으로 남을 것인가?
넷플릭스 자체 제작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연일 화제다. 오징어 게임은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에 참가한 사람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극한의 게임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표현에 있어 상당히 자극적인 부분이 있어 논란이 되고 있으면서도, 극한의 상황에 몰린 인간의 냉소적이고 절망적인 모습을 현실적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이 인기의 요인이다.
어쩌면 우리의 삶은 오징어 게임과 닮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 끝은커녕 목적과 방향도 제대로 알 수 없는 게임을 위해 우리는 열심히 다른 사람을 따라갈 뿐이다. 여느 게임처럼 우리의 삶도 많은 관문을 통과할수록 더 높은 레벨에 도달할 수 있다. 당연히 하나의 관문을 통과하면 다음 관문도 통과할 확률이 높아진다. 높은 시험 성적을 받으면 좋은 대학에 갈 확률이 높아지고, 또 좋은 직장을 구할 확률이 높아진다. 그러나 그 누구도 ‘왜 관문을 통과한 사람만 높은 레벨을 얻을 수 있나요?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사람은 그 다음 관문을 통과할 기회조차 얻을 수 없는 건가요?’라는 물음에 대답할 수 없다. 삶이 정말로 게임이라면 사용자에게 보상을 주어 게임의 진행을 유도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우리의 삶은 진짜 게임이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는 의심해봐야 하지 않을까? 마치 게임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 세계를.
사실 우리는 사회의 암묵적인 체제에 순응하는 것이 편하기 때문에 그저 모른 척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회가 정해둔 기준을 넘기만 하면 적어도 혼자 낙오될 일은 없으니 말이다. 기준선을 넘지 못한 사람이 겪는 부당한 상황을 목격해도, 우리는 애써 합리화할 뿐이다. 나는 열심히 했으니까 기준을 넘었고, 저 사람은 열심히 하지 않았으니까 기준을 못 넘은 거야. 그게 내 잘못은 아니잖아. 이건 어쩔 수 없는 세상의 이치일 뿐이야. 어느덧 차별은 내재화되어 차별을 차별이라 인지하지 못하게 되었고, 우리의 노력에는 단위가 생겨버렸다. 스스로 값을 매긴 노력이라는 족쇄는 평생 우리를 따라다닌다. 우리가 어떤 일에서 원하던 결과를 얻지 못했을 때, 사회는 우리를 노력이 부족한 실패자로 낙인찍을 뿐이다. 결국 우리는 학벌주의와 자본주의로 점철된 무한 경쟁의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 맹목적으로 ‘노력’할 뿐이다.
이 잔인한 체제에 회의를 느낀다고 해도, 나 혼자 다른 길을 걷기란 쉽지 않다. 그 길의 끝에 결국 낙오자라는 인식만이 남을까봐 두렵고, 어떻게 해야 이 체제를 바꿀 수 있는지 그 답을 내리지도 못했다. 그러나 이 체제를 바꿔야 하는 책임과 자격은 결국 이 체제에 속해 있는 우리 모두에게 있다. 차별과 사회적 문제를 인지하고 사회의 분위기를 바꾸려는 노력. 이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그저 게임의 참여자로 남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윤소영 기자